#크리스마스_특별_메시지
삐- 네, 미에스토마 예카테리나 디-뮐러입니다. 부재중이오니 연락 바랍니다. 이 녹음은 크리스마스 전용 녹음입니다. 지금 뮐러 집안의 조촐하고 성대한 파티 중인 관계로 남의 연락에 답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모쪼록 바쁜 시간 보내고 있길 바라요. 메리-크리스마스.
#예수의_140자_단편소설
돌아갈 수 없음에 대해, 미에스토마 예카테리나 디 안젤로는 지긋지긋함을 느낀다. 단어에 회의감을 느껴 정정을 요청한다고 한들 신세계는 응하지 않는다. 받은 값 이상의 역량을 보일 리 없다는 산술값에 대해 알고 있다. 그래도 억울함이 올라오는 날엔 오렌지 주스를 타 마셔 벌컥벌컥 마신다.
사람이 살면서 원치 않아 벌어지는 일들은 몇 개나 있을까. 태어나는 것으로 한 번이 충족된다. 그리고 미에스토마-우리의 미마는 성인이 되기도 전에 죽을 거라는 예고를 받고 자라난 세대의 몇 없는 청소년이었다. 싫어. 그치만, 또 누구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는가!
바바야가는 미마를 잘 보살피는 노파였을 뿐. 마지막 세대에게도 최선을 다 하고자 노쇠한 몸을 이끌고 집 현관까지 찾아와 뺨을 쓸어내려주곤 했다. 신은 원하기만 한다면 갓 나온 보드와 저어기 제과점에서 파는 호두 타르트까지 예쁘게 포장해서 미마에게 줄 수 있었다.
에라토는 허구한날 커피를 마시면서 바쁜 일이 있음 말을 못 듣곤 했으나, 미마가 춥다고 방 밖으로 담요 끌고 나오면 의자를 끌어 옆에 앉게 했다. 모데메스토는 학교 숙제를 해결해주진 않았으나, 학교에 가서 시건방진 하는 교사의 콧대를 손가락질로 납작하게 만들어주는 기행을 부려주었다.
미에스토마는 라디오를 건드린다. 분해해서, 하모니카로 직조한다. 끝에 입술을 불어 바람을 거세게 불면 삑-소리가 난다. 손으로 툭툭 내치듯 군다. 철판이 나누어지며 꼬아지더니 전선이 되어주고, 불기 위해 난 수많은 구멍들이 동그래지다가 살이 덧대어지더니, 라디오의 버튼으로 교체된다.
딱, 그 정도의 권능. 자신은, 영원히 갓 성인이 된 채로 존재할까. 실존 유무에 대해 갑작스레 고민하는 이유는- 그가 살아남은 사람 중 한 명이고, 모든 것이 무너진 지구에서 뛰쳐나온 스물두명 중 단 하나의 객체였으며, 나아가 결코 소멸되지 않을 인류로 선정된 탓이다.
그리고, 정말 솔직히 말을 하자면, 미마는 그 넷의 보호자 중에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상대가 없다고 생각했다. 있지. 사람에겐 소중한 사람이 있고, 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이 나를 일 순위로 둘 거라는 보장은 없다. 발을 교차하며 의자에 앉아, 미술 작품 카탈로그를 넘기며 마음 먹었다.
...그래도. 그래도, 그 말을 함부로 꺼내지 않는다. 매년 한 번 정도는 상복을 입은 채로 사람 사이를 활보한다고 해도. 자신의 이름을 통째로 도려내지 않는 한 잊을 수 없는 형태로 있어, 가끔 거울 안에서 흰 꽃을 든 자신이 보일 적이면 유품이 저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쉽사리 끊지 못한 채로.
어쩌면 억울할 지도 몰라. 짜증나고! 하지만, 죽은 사람의 이름을 훼손하는 것은 남은 사람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도 더 심한 일이다. 미에스토마 예카테리나 디-뮐러는 이 이유로 손가락질 하길 포기한다. 노크 소리가 난다. 똑. 똑. 고개를 든다. 손잡이가 달칵 돌아간다. 사람이 들어온다.
미마, 얘. 넌 여기서 도대체 무슨 청승을 떨고 있는 거니? 아노라. 마침 라디오를 하모니카로 만들었다가 되돌리는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구경할래요? 뭐. 재밌어보이긴 하네. 이것까지 하고 나면, 저희가 식사를 할 시간이 마침 될 것 같거든요. 푹신한 소파 옆에 무게가 하나 더 얹어진다.
해가 따스히 돌아오는 시각. 초침을 돌려둘까요? 아니, 그건 너무 무모한 짓이잖아! 알겠어요. 그러면 나중에 자기 전에, 책 읽을 때에만 잠깐 빛을 다르게 할게요. 나는, 아노라랑 낮 시간을 같이... 그러니까, 자주 못 즐기잖아요. 아노라의 손가락이 미마에게 닿는다. 미마는 어설프게 웃는다.
얘.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아뇨. 아니. 생각을 좀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끝났고요. 신경써도 될 건은 아니에요. 정말? 아노라가 들어오는 걸 보고 그대로 잊어버렸어요. 새끼 손가락 걸까요? 앗차. 이건 여섯번째 손가락... 미에스토마! 장난이에요. 하지만 걸진 않을래요. 혹시나 모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