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페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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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9. 1.

 

 

 


점멸하는 시야. 끝에 다다른 구인류의 말로. 우리는 세상의 끝에서 의문을 야기한다. 우린 다른 시대를 희망한 인간들이었나. 우리는 어떠한 부귀영화를 위해 여기까지 오게 됐는가. 우리는… 어리디 어린 소년은 유리의 창에 손바닥을 올렸다. 세상이 뒤바뀐다. 그리고 그곳의 당신들의 자리는 없다.
세계가 구축된다. 25세기의 과한 에너지 사용 및 잦은 전쟁 발발로 인해 과열이 된 지구가 끝끝내 버티지 못하고 화목을 논하던 청년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그대로 분열이 되어 산산조각이 난다. 우리는 그것을 바탕 삼아 새로운 세계를 구축했다. 과정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야….

신이 만드는 기적이라는 것은 으레 가장 어처구니 없게 실현되어야 하는 법 아니던가?

정신을 차리며 자신이 구인류의 흔적이라는 걸 알아차린 건 2519년의 어느 날이었다. 다급하게 숨을 삼키며 달력을 본 후 자신의 나이가 몇인지 헤아리기 시작했다. 그래. 여기서 태어나 -잠깐만, 모든 의심은 거두고 간단하게 보자. 여기서 구성되어 20년 간의 데이터값을 지니고 있는 나.
방 안에는 내가  좋아할 법한 것들만 간단하게 배치되어 있다. 구식 라디오. 분해하기 좋게 생긴 알람 시계. 바닥에 묻을 걱정 없이 놓인 스케이트 보드와 거친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풀어주기 위한 빗 서너개, 몸을 기울여 일으키면 바닥에 느껴지는 동그란 거위 모양 매트.
우와, 정말 안젤로가 사주지 않을 법하게 생긴 물건이잖아. 미에스토마 예카테리나 디 안젤로는 기겁을 한 것도 잠시, 경악과 감탄으로 소리가 바뀌는 음을 냈다. 한 켠에 걸린 가족 사진엔 단 둘이 단출하게 서있었다. 기존의 다섯, 넷, 그 정도의 보호자가 아닌 단 한 사람과.
미에스토마 예카테리나 디-뮐러는 그대로 문손잡이를 돌려 거실로 뛰쳐 나갔다. 그곳엔 오렌지 주스를 때마침 레토르트 가루 넣어 타서 만들고 있는 아노라 뮐러가 있었다.
 
"아노라!" 그렇게 외치는 소리에 아노라는 놀라 잔을 덜컥 흔들었다. 잔여물이 손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얘. 넌 왜 이렇게 남 놀래키는 재주가 있니."
"아노라, 가족이 된 건가요? 정말로?"
"뭐가 그렇게 의구심이 많아."
"우린 분명 몇 분 전 까지만 하더라도-"
"우주선 안에 있었다고?"
"네!"

아노라는 끈적거리지 않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어디서부터 설명을 하면 좋을지 지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자, 잘 들어 미에스토마 디 뮐러."
"네. 준비 됐어요."
"네가 그 이야길 밤마다 하는 것도 이게 이제 일곱 번째야."
"그건 준비가 안 된 이야기인데."
"발칙한 꼬맹이 같으니라고."
"진심이에요. 왜 그런데 난 기억을 못-하고-있는, 거지..."
"바로 이래서 그렇지."
미마는 자신의 시야가 흔들리는 걸 느낀다. 세상이 뒤바뀐다. 어, 어어. 자신이 입고 있던 천쪼가리 손에 잡히면서 길게 뻗어져나와 거미줄처럼 늘어지더니 어느 사이 아예 재질이 다른 천으로 바뀐다. 신고 있던 슬리퍼는 한눈 팔면 운동화로 바뀌어 발을 감싸고  있다.

"네 능력은 어려우니까."

울렁울렁. 일렁일렁. 이젠 속까지 뒤엉키기 시작했다. 울컥, 하고 맨속에 신물 올라와 구역질을 하고 이를 붙잡는 손에 코피가 묻어났을 즈음 아노란 자신을 밀며 방 안으로 집어넣으려고 했다.

"무, 무서워요. 하지 말아요."
"얘. 내가 이런 거 잘 처리하는 거 알지 않니? 믿어봐."
"믿고 있어요. 하지만 설명을 해달란 말이에요. 날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로  만들지 말고!"
"나는 문을 다뤄. 내가 여는 모든 곳엔 종착지가 있지. 그리고 넌 현상을 아예 바꿔버리는 발칙한 능력을 지니게 됐단다. 넌 스스로를 바꾸지 않는 법 부터 다뤄야 해. 나랑 다르게 말이지."
"정보량이 너무 많아요. 압축해서 말해줘요!"
"나는 문 열었다 닫았다가를 몇백번 반복하면 되는데 넌 직접 몸으로 깨달아야 한다 이거지." 
나왔던 문이 덜컥 열린다. 뒷편으로 쓰러져 넘어진다. 설탕과 밀가루로 이루어진 모빌과 푹신한 인형과 바닥 매트리스가 준비된 곳으로.

그리고 시야가 검어진다. 침묵. 휴식.

 

 

글 ⓒ https://x.com/text_fromtheold/status/1825450713608290778

페어틀 ⓒ https://www.postype.com/@he-cocoa77/post/16676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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