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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사무용 책상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낯섭니다.
본래는 페인트칠이 거의 까진 천장은 없습니다. 그 대신 웬 통 유리로 대체되어서, 유리 너머로 커다란 눈 하나가 조용히 움직이는 걸 보지 못 해도 느낍니다.
본래 흰색이었으나 마모되어가며 아이보리 색상으로 변했던 바닥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것마저 웬 통 유리로 대체되어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나는 괴물들의 감옥이 되어 있습니다.
벽 면도…. 마찬가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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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건 모르겠지만. 이것만큼은 알 것 같습니다.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정면에 있는 차혜경.
그리고 차혜경과 설석환 사이에 있는 리볼버 한 자루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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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 하나. 거짓말은 안 됩니다.
규칙 둘, 질문 거절권은 없어.
규칙 셋, 한 번의 라운드 당, 상대에게 3번의 질문만 할 수 있어.
규칙넷, 우리는 총 3번의 라운드만 진행을 할 거야.
간단한 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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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하고 싶은 말이 다 써져 있어. 그렇게 불만이 있으면, ▒▒에게 말을 하던가! (그런 투정을 짧게 받아치다가. 설석환의 세 번의 두드림. 이번에는 차혜경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야. 나 따라하는 거야? 나 따라해봤자, 좋은 거 하나 없을 텐데.
좋아. 짜증이 난 얼굴이지, 이해하지 못 한 얼굴은 아니니까. 게임을 바로 시작하지.
하지만 게임에는 순서가 있잖아.
누가 먼저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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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혜경은 숨을 쉰다. 얼굴을 턱에 괴고서, 설석환만을 바라본다.) 나에겐 이게 가장 궁금하니까. 이런 것부터 물어볼까.
정신은 차렸어? 관등성명부터 말해 봐,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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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곤란하긴 하네. 나는 차혜경에게 궁금한 게 없는데 말이야. (손가락을 가만히 까딱이다가) 첫 질문이니까. 지금 차헤경 기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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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진 질문에 차분하게 대답한다.)
기분이 아주 좋아. 얼마나 좋은 지는, 글쎄. 굳이 말하고 싶지 않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치고. 표정은 구긴 채로,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그럼 현산경찰청 광역수사대 소속 설석환 경감님은.
왜 이곳에 오게 된 건지, 기억 나는 게 있나? 이게 내 두 번째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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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말로 덧붙인다.) 그 이상 마음 썼다가 당신한테 무슨 불호령 들을 줄 알고?
음, 대답과 표정이 많이 다른데. (이내 무슨 상관인가 싶어서 이어지는 질문에 잠시 미간을 좁히고.)
(나는 기억하는 것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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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치: | 50/25/10 |
굴림: | 3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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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검어지고, 태양이 추락한 것처럼 땅이 불타고. 사람이 비명을 지르고, 비명을 쫓는 괴물. 그것으로 난장판이 된 세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기억이 떠오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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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두 번째 질문. 차혜경은 좀 괜찮나? (앞뒤 맥락이 없고, 포괄적인 질문임을 안다. 그저 답하는 상대에게 모든 의미 파악을 전가하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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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와 천재는 한끝 차이라는 말이 생각이 나. 약간 비꼬듯 그런 말을 했다.)
괜찮지. 나는 언제나 당신 앞에서 '괜찮은 사람'이 되고는 했잖아. 그걸 당신도 꽤 마음에 들어한다고 생각하고.
그러니까 괜찮아. 이것이 내 답이겠어.
그러니까 나도 세 번째 질문을 이렇게 던져볼까?
설석환 씨. 내가 방금 한 대답에서, "괜찮지 않아"라고 말했다면. 어땠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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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혜경이 내 앞에서 괜찮은 사람이었나? 그건 조금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마음에 들어한 차혜경은 그다지 괜찮지는 않았거든.
(물론 '괜찮은 사람'의 '괜찮다'를 어떤 의미로 해석할지는 개인의 이해에 따라 다르겠으나.)
어려운 질문이네. 나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가정에 답하는 걸 썩 좋아하진 않아서. 사실 당신이 괜찮다고 할 거라고 생각하고 물어보기도 했고. 그냥, 차혜경은 그럴 것 같았거든.
괜찮지 않다고 했으면, 당신 잘 하는 대로 또 내 입이 닫혔겠지? (조금은 곤혹스러운 듯한 미소를 짓는다.)
세 번째 질문, 당신은 여전히 강한 척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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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알고, 나 혼자만 괴롭고. 나 혼자만 답답하지. 혜경은 턱을 괴던 팔을 풀고서, 가슴을 몇 번 쳤다. 그러한 행동을 하는 와중에 말은 이어졌다.)
나를 통해서 확인 받으려고 하지 마. 무의미한 짓이라고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나?
그리고 질문이 뭐 그래?
다, 다, 죄 다. 답을 정하고 하는 질문이지. 당신?
(이것은 삼문답에서 벗어난 말이었기에. 돌아올 대답이 없으리란 걸 알았다. 혜경은 말을 그렇게 쏟아낸 후,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숨을 몇 번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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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한 척 같은 걸 한 적이 없어. 강한 척이나 할 만큼, 약하지 않으니까. 나는 남에게 기댄 적도 없이 살아왔고. 강한 사람을 앞에 두고, 강한 척을 하냐는 질문에는 이런 말 뿐이 하지 못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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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석환 씨, 지금 당장의 나한테 숨기고 있는 말이 있나?
경찰이니까 잘 알 것 아니야. 말을 교묘하게 숨기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있어야 할 것을 삼킨 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거짓말은 하지 않았어도. 그와 비슷한 거, 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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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의 말과는 다르게 답을 정해놓고 하는 질문은 아니다. 차혜경의 답은 대부분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게 기본이었으니까. 오히려 들어맞으면 그게 신기한. 늘 예외적인 존재.)
(차혜경은 약하지 않다. 맞다. 그리고 자신이 보는 차혜경은 강하지 않다. 그저 답변에 끄덕인다.)
이거 질문을 해서 의문이 풀린다거나 더 알게 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 그냥 똑같이 빙빙 돌고 있는 거 아닌가.
이러지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없어. 그래도 조금 더 확실하게 답을 해볼까. 차혜경에게 무언가를 숨기고자 하는 의지를 가져본 적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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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그대로를 돌려 주려다가 비겁하다고 할까 싶어 거두고는) 이건 개인적으로 궁금했는데. 그날, 나랑 통화하던 날.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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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아닌 것에 대답을 해준 사람 앞에서 하는 말이 맞았다. 차혜경은 이제 팔짱을 낀 채고, 입술을 살짝 내밀고 있었다. 여자는 입술의 무게가 참 무겁다는 듯, 조금 오래 침묵했다. 생각이 많았다.)
(그렇게 그녀가 머리 속으로 한 생각은 이랬다.
나도 그래. 당신도 그렇고, 우리 애들한테도 그렇고. 굳이 무언가 숨기고자 하지는 않았어. 사실은 숨기고자 했는데. 늘 들통이 났어. 내가 연기에 재주가 없는 건지. 아니면 연기를 알아볼 정도로 다들 통찰력이 좋은 건지.
그래서 언젠가부터 그만두게 됐어.
그런데. 동시에 생각이 많아질 수 밖에 없었지. 이 봐, 아저씨. 세상에 진심을 숨기고자 하지 않는 관계가 어디에 있겠냐고. 사십이고, 오십이고. 먹은 사람끼리, 자존심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에 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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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건 충동이었는데.)
불쌍하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그 불쌍함은 딱 나만큼이라고 생각했어.
그 전까지는 당신이란 사람이 참 바보 같다고 생각했어. 왜 그렇게 남에게 맞춰가면서 사는 건지, 알 수 없었어. 하지만 딱 나만큼의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니까. 보이지 않던 게 보이는 것 같았어.
같은 시선을 공유한다는 기분이 들었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당신이 된 것처럼 이해가 됐고. 당신이 되어봤으니, 듣고 싶어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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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신이 듣고 싶은 대답은 알았어.
그랬어. 그냥, 그랬어.
(시선을 위로도, 아래로도. 돌리지 못 하니. 은근히 사람 신경을 쓰이게 하는 리볼버나 바라본다.)
이제 내 질문이야. 소문이 있더라. 부서를 옮기기 희망한다고. 그 소문은 진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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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말이야, 차혜경.
네 머리든 마음이든 가득 채우고 지나가는 그 생각들을 네 입으로 다 솔직하게 뱉어내는 날이 오지 않는 이상 아마도 넌 평생 날 모를 거야. 그리고 그건 이쪽도 피차 마찬가지겠지.
차혜경한테 불쌍하게 보였구나, 내가. (작게 소리 내어 웃는다. 한 번도 자신이 남에게 맞춰서 살고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혜경의 말을 끊고 싶지는 않았기에 조용히 경청한다.)
어차피 그 순간의 나도, 내 동생의 말이 아니라. 차혜경이 내게 건네는 말이 필요했을 뿐이었으니까. 그냥... 그때의 네가, 네 마음이 나를 참 찔렀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그래서 물어봤어.
(혜경의 시선 끝에 있을 리볼버를 바라보다가 그 시선 따라 다시 올라가 혜경을 바라본다.) 광수대에 더 있을 생각은 없어서. 당장은 그래. 몇 달 후에 이전에 있던 곳으로 돌아갈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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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내게 말했던 것처럼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은 생각으로 나아갈 거야? ......이러면 질문이 두 가지가 되나? 앞에 걸 기준으로 답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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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다루는 법도 잘 알면서. 차혜경은 손가락으로 툭 리볼버를 쳤다. 그 모습은 딱, 그 외에 할 짓이 없어서 하는 걸로 보였으리라.)
조언인 척 하는 헛소리 잘 들었어. 그래. 내가 생각이 많기는 하지. 하지만.... 아니야. 이건 먼저 질문에 대답하고, 묻는 게 좋겠어.
나는, 그래.
당신에게 말을 한 것처럼. 이제는 견디는 경찰이 될 거야. 증명하겠다고 한 말은 분명히 거짓말이 아니었으니까.
정년 퇴임이라는 거,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거 알고 있지? 그걸 목표로 견디고 또 견디며, 그저 그런 경찰이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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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혜경이 잠시 눈을 감는다. 눈꺼풀이 덮힌 그 안에서, 눈물 같은 것이 구르고 구른다.) 경찰이 되기로 하면서, 진실만큼은 외면하지 말자고 결심한 사람이니까. 그게 분노에 휩싸인 상태로 한 약속이라고 해도.
앳된 다짐이라고 해도, 그건 여전히 나의 다짐이야. 설 경감님. 난 그래서 그 다짐에 부끄럽지 않은 경찰로 살아가다가 때가 되면 퇴직 할 거야.
….
짜증나는 대답이로군.
내 여섯 번째 질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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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라고 일축하는 건 너무한데. 그냥, 내가 숨기려 하지 않았어도 너에게 전달되지 않는 말이 있는 것처럼. 네가 숨기려 하지 않더라도. (아니, 사실 차혜경은 어느 정도 숨기려는 것 같지만.) 전부 뱉지 않는 이상은 알 수 없는 게 우리 관계라고 생각해, 나는. 그리고 둘 다 그럴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고.
적어도 나는 이런 삼문답이 아니더라도 묻는 말에는 진실을 말하니까, 차혜경이 질문지를 잘 써 보는 수박에 없지 않겠어? 늘 책임을 전가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당신 답이 꽤 마음에 드는 대답인데. (역시나 가볍게 웃었다.)
경찰 차혜경의 마지막을 함께 보고 싶을 정도로. 그리고 거기 지지 않을 사람으로 먼저 무사히 마치고 싶어질 정도로. (나지막이 진심이라 덧붙인다. 자신은 이상적인 말을 뱉는 사람이고 차혜경은 아무래도 의심이 많으니까. 입에 발린 말로 치부되는 것은 아무래도 싫었으니.)
그래서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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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가 물을게. 이런 나는 별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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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정말로 별로야. 설석환이란 사람이 진저리날 정도로, 별로야.
그런데 그 별로라는 말이….
싫다는 건 아닌 것 같아.
(숨.) 평소라면 여기까지만 말할 테지만. 조금 더 용기를 내볼게.
사람의 환심을 사는 방법은 단순하다고 생각 해. 그 사람이 좋아할 짓은 하고, 싫어할 짓은 하지 않고. 그러기만 해도 관계는 적당히 유지가 되고, 원하는 것도 서로 얻어갈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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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 하나 없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환심을 사야하는 걸까. 그래서 당신 앞에서는 가능하면 가장 안전한 대답을 하고, 부담이 없는 요구나 하지.
별로야. 하지만 싫지는 않아. 그리고 무서워.
난 당신이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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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어떤 질문을 해야할 지 떠오르지 않네. ...먼저 질문할래, 당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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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있는 혜경을 바라본다. 차혜경에게 무섭다는 말을 듣게 되는 일, 제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알 수 없고, 답이 없어서 무섭다는 마음까지도 저로서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알기 쉽고, 답이 있는 사람은 제게는 있지도 않았지만, 있다고 한들 마음이 가지도 않았으니.)
사람의 환심이라는 게 정말 그렇게 간단하게 얻어지는 걸까. 그렇게 얻은 환심은 정말 진실되었다고 할 수가 있나? 가장 안전한 대답과, 부담 없는 요구. 어쩌면 당신이 택한 안전이라는 거. 설석환이라는 사람한테는 오답일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차혜경의 마음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이 삼문답이라는 거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너와 내가 이런 대화를 또 언제 해볼 수 있을까. 이렇게 질문을 넘기는 차혜경도 볼 수 있고.
그러면... 지금이 아니면 아마 묻지 않을 것 같은 질문을 하는 게 좋겠지? (궁금하지만, 구태여 묻지 않을 질문. 그것은 아마도 자신에 대한 것일 테다. 지금의 흐름에서 한 번쯤은 물을 수밖에 없는 것.)
차혜경이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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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내 손은 어디로 가 있는가? 혜경은 리볼버를 만지던 손을 멈춘 후로 슬쩍 제 무릎 위에 가져다 놓았다. 테이블 아래로 손을 숨긴 것이다.)
(그렇게 숨겨진 손을 꽉 붙잡은 채로, 작게 떨었다. 그게 차혜경만이 아닌 자기 자신의 모습이다.)
그러게.
(하지만 알고 있다. 내가 이렇게 숨긴다고 한들. 숨겨지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애초에 이런 볼품없는 모습을 그이 앞에서 숨기고자 했다면, 테이블에 손을 내리는 게 아니라. 그에게 강요하지 않았을까. 눈 감아, 설석환.)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한 행동에는 늘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는 했어. 당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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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목이, 마음이, 영혼이. 흔들리고, 떨어지고, 찢겨나가는 기분이 드는 말을 하고 그리고 대답해줄 때야 말로. 얼굴 표정이 꽤 괜찮아지더라.
그래서 나한테 당신이란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
내 모든 보호막을 투과해서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이것도 알고 있어. 그건 진짜 당신이 아니라는 걸. 만약에 당신이 정말로 '이런' 사람이었더라면? 나는 두려울 것도 없었을 거야. 그런 사람 앞에서 무엇을 숨길 수 있겠냐면서 오히려 날 들여다보고 알아서 맞춰 움직이라며 떵떵거릴테니까.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당신이란 사람을 왜 '이렇게' 생각할까? (…) 아, 이건 질문이 아니야. 그렇다고 의문도 아니야. 질문으로 의태한 내 미궁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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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몇 분을 침묵했다. 잠깐 생각 좀 할게. 그런 말도 없이, 입을 앙 다물고 몇 분이나 고목처럼 굳어있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사람을 좋아해?
(두 사람 모두 알다시피. 차혜경의 침묵은 고요가 아니었다. 혜경의 입에서는 정말로 툭. 갑작스럽게 툭. 그 한 마디가 떨어져 나왔다. 번잡하기 짝이 없는 머리 속에서 답을 내지 못 한 질문이었기에. 그 답을 구하기 위해서, 당신께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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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혜경이 나에게 정답을 찾지 못하겠다면. 내가 당신의 난제라면. 굳이 풀지 않아도 되잖아. 세상에는 풀지 않았을 때 가치가 있는 것도 있으니까.
(테이블 위로 제 양 팔꿈치를 올리고 가운데에 리볼버를 도로 내려 놓는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그게 지금은 아닌 것 같아서. 내려놓은 리볼버를 바라보며.)
나는 정답 말고 차혜경을 원하니까. 당신도 그래보면?
(모든 보호막을 투과해서 바라보는 사람. 정말 그런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자신도 알고 있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 '그러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갈등이 생기는 것이 어쩌면 필연적이라는 것도.)
(갈무리 되지 않고, 언어로 구체화 되지 않은 답변. 의문만을 늘리고 전달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미안하다는 말에는 저절로 괜찮다는 말이 뒤따른다. '이런' 사람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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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그렇게 사람을 좋아해? 사실 참 많이 듣는 말이다. 비단 혜경뿐 아니라 거의 모두에게. 그리고 같은 답을 한다, 모두에게.)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그런데, 차혜경이 원하는 답은 이게 아니겠지?
(이건 사실이면서도 참 편리한 답이다. 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쉬운 답변. 그렇지만, 제 앞에서 손을 숨겨버린 혜경에게는 조금 다른 답변을 해줘야 할 것 같아서.)
혹시 말이야, 손 달라고 하면 주나? 잡고 싶어서. (테이블 위로 제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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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상상이 가지만 구체적이지 못 했다. 어렴풋한 감각만이 느껴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 만큼은 모를 수 없었다. 뻗은 팔, 눈을 뜨면 펼쳐져 있을 손바닥.)
… 싫어. 지금은 당신이 날 잡아주지 않으면 해. 버티지 못 할 거야. 또 다시. 다, 몽땅, 죄다, 당신한테 넘겨버릴 테니까. 그리고 당신은 그걸 기꺼이 받을 거잖아. 좋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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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좋아해. 어느 것 하나도 내 생각처럼 되지 않아서. 이미 생각처럼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세상에 살면서도. 그래서 힘들었는데도. 참 바보 같이 웃음이 나.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대라는 사람을 보는 게 좋고. 진심을 꺼내주는 게 좋고. 내가 그 사람에게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게 좋고.
나라는 사람이 나로만 이루어지지 않은 게 좋아. 내가 말하는 '나'는, '나'라는 범주에는, 설석환 하나 덜렁 있지 않거든.
신기하잖아. 그저 나는 내가 원해서 애정을 줬을 뿐인데, 돌아오는 일이 있다는 게... 아, 물론 돌려주지 않아도 돼. 내 애정이지, 당신의 빚은 아니니까.
사실 묻는 사람은 많았지만, 진지하게 생각했던 적이 없어.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나 싶어서. 여기까지가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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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침음을 흘리며 침묵한다. 회피가 아닌 고뇌의 침묵.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 눈을 감은 채로 두 사람 사이에 고요가 내려앉는다. 질문에 대한 생각을 하기 위함이었으나, 차혜경의 심정이 더 궁금한 것은 왜일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아마도 직전 질문과 비슷한 답을 받을 것 같았으니. 조금 치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지금은 모든 신경이 하나로만 집중되어 있기에 궁금한 것도 결국은 하나뿐이다. 찬찬히 눈을 뜬다.)
그럼, 혜경아. 지금은 기분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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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어버린 그 상태 그대로, 혜경은 입만 작게 움직였다.)
내가 아까 그랬잖아? 나는 당신이 두렵다고. 나, 왜 당신이 두려웠는 지를 알 것 같아. 설석환,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아. 당신은 다양함을 원하는 사람이잖아. 자신이 가진 것을 탐내지 않는 사람이잖아.
그런데 나는 아니야. 나는 남이 가진 것을 탐을 내는 사람이고. 가지고자 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더 좋은 사람이고자 나아가는 사람이지.
설석환 씨. 난 당신이 싫지 않아. 그래서 그것으로부터 모든 (당신에 관한) 내 문제가 생겨나고는 하지. 당신의 좋은 점을 훔쳐서, 내 것으로 삼아버리고 싶어. 인류라는 종이 더 좋아질 수 있도록.
그런데 그렇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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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었어, 이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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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또 나는, 당신처럼 그 감정을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그래서 난 내가 가진 걸,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뿐이야. 내 질투는 추악하니까.
네가 생각하는 나의 좋은 점, 그리고 네가 가지고 싶어 하는 나의 좋은 점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 말대로 당신이 바뀐다면 우리의 관계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
그런 차혜경의 불안함을 잠재워주는 데에 필요한 건 다정한 확신일지 모르겠지만... 너도 알다시피 나는 이런 일에는 확언하지 않아서.
(그저 입꼬리만 올려 웃고 만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차혜경이라도 현재의 나는 당신을 싫어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나, 그걸 입으로 꺼내는 것은 또 다르다. 그게 설령 당신의 불안을 부추기더라도 하는 수 없다.)
내가 널 싫어할까 무서워서, 불안해서. 차혜경이 차혜경답지 못한 건 내가 원하지 않으니까. 당신의 두려움에 내가 있다면, 결국 이 관계는 나로 인해 깨지지 않겠어? 하고 싶은 대로 살아.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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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가장 작은 것부터 천천히 시작해보자. 늘 그러듯, 내 안에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가 언제 쉽게 풀리는 것을 본 적이 있냐며. 늘 그러듯, 하나하나, 손으로 짚어가보자며.)
(나는 말하기 시작했다. 찬찬히 눈이 떠지는 그 속도에 맞춰서.)
지금 내 기분은 이래. 여전히 무서워. 당신이란 사람을 이렇게 더 잘 알게 되어버렸으니까. 심지어 명확하지 않고 그저 어렴풋 느끼던 것을 당신의 입으로 듣고 말기도 했으니까.
정말로 당신을 보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겠구나 싶어졌다는 거야. 응. 한참 전의 질문이지만. 당신이 부서를 옮긴다고 했던 그 말에 대한, 내 기분이야. 체념 말이야.
그래서 생각을 좀 해봤어. 체념하고 난 후에 나는... 우리를 어떻게 하고 싶어하는 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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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날 여전히 좋아하냐는 질문이었겠으며.)
그 어떤 나라도 좋다는 대답에 어떤 특별함에 이끌려서 날 좋아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
(이게 그 답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었다.)
그때 기분은 아주 이상했어. 그래서 그랬어.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 눈만 바라보고, 날 다 알아주기를 바란 게. 아까 나 말이야. 무척이나 질투가 났던 것 같아. 욕심이 잠깐 탐욕이 된 거야.
당신 같은 사람을 어디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겠어. (그 말을 하면서 버석거리는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눈에 고여있던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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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너무 이르다. 정말, 내가 생각한 것보다 이르다. '이럴 거라면 날 계속 경찰하게 하지 말았어야지...' 이런 마음에 없는 괜한 소리나 하게 될 것만 같고 그래.
분명 내 감정이 무엇인지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면, 분명히 내뱉을 말이기도 했지만.
그런데 웃긴 사실 하나 알려줄까?
당신한테 떠나라고 말하고 싶어. 네가 싫어서 홧김에 하는 말이 아니야. 진심으로, 그러기를 바라여서 하는 말이야.
그래. 당신은 '그런' 사람이구나. 당신이 더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 ... 참 기쁘네. 응, 기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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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무려, 이 사람이. 내가 인정한 사람이다! 세상에 이렇게 말해주면서.
(원래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너도, 나도 알고 있다. 똑바로 얼굴을 치켜세웠을 때 흘린 한 방울이었다면. 고개를 숙였을 때, 떨어지는 것은 몇 방울일지. 너도, 나도 알 수 있었다.)
난 참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아서 기뻐. 그래. 이게 내 흙탕물 같은 수심 안에 있던 감정이야. 나, 정말로 기뻐.
그런데 그 기쁨에 목이 메어. 설석환, 이렇게 큰 기쁨은 사람에게 독이 되고는 하나 봐. 나, 이 기쁨에 너무 힘들어.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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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숨을 한 번 몰아쉬고는 혜경을 올려다본다.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주고 싶고, 어쩌면 안아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만히 올려다본다.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차혜경은 생각보다 바보 같은 면이 있는지도 모르겠어. 당신이 싫어서 도망간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지. 그 점이 차혜경답긴 한데.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떠한 큰 결정에 자신이 원인일 거로 추측하는 것은 웬만한 자신감으로는 어려운 일이니까.)
내가 어디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이 좁은 땅에서 고작 몇 시간 떨어지는 걸로 그렇게 약한 소리를 하면 어떡해.
(자신은 이 이별에 대해 솔직한 심정으로, 그 어떤 것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쉬움도, 슬픔도, 기쁨도 없다. 그저 가는 것이다. 이곳에 있는 동안 충분히 사랑했고, 마음 썼으며, 아마 앞으로도 내어준 마음의 자리를 뺏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전에도 그랬으며, 앞으로의 인생도 그러할 테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으니까. 그리고 그 점을 알기에 혜경은 기회를 준다는 표현을 썼다는 걸 안다.)
근데, 나는 왜 그런 당신의 말을 듣고 기쁜 걸까. (우는 혜경의 앞에서 은은하게 웃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엇 하나 같은 게 없다.) 나도 참. 사람이 뻔한 것 같지. 내가 필요하다는 게, 내가 당신한테 어떠한 의미를 품고 있다는 게. 그 사실 하나로 이렇게 따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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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이렇게 네 마음을 다 꺼내준 시점에서도. 너를 온전히 이해한 건 아니야. 그래도 당신 마음은 와닿았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응, 감정이라는 건 전이되는 거잖아.
도와달라고 했지만. 그냥, 울어. 그게 정말 기쁨에 메는 거라면, 그냥 울어버려. 네 감정은 내가 무엇 하나 도와줄 수가 없어. 그래도...
(우는 혜경을 바라보던 시선을 내린다. 여전히 테이블 중앙에 위치한 리볼버를 바라본다. 본래 하려던 질문이 따로 있었지만, 이 말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다시금 혜경을 올려다본다. 게임을 시작할 때와는 달리 한없이 누그러져 있을 목소리가 울린다.)
혜경아, 내가 어떻게 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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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울어.)
(혜경은 그 말대로 했다. 눈을 한 번 깜빡이니. 혜경이 앉아있는 쪽 테이블로 몇 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언제나 그러듯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어차피 이렇게 우는 얼굴.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이 세상의 유일한 생존자는 자신을 위해서 기꺼이 고개를 내리기까지 하지 않던가.)
그리고 우리 다시 보지는 말자고, 거기에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말 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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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지는 말자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아. 영원한 이별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고 나는 당신이…. 마음 아파해 줬으면 좋겠다. 나 이기적일까? 그렇지만 말이야. 침묵하지 않은 솔직한 심정은 그래.
거짓이 아닌 말은 이거야. 거짓이 없을 거라고 약속하라고 했으니까, 받아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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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숨 막히게 만들고 싶은 거야? 나는 설석환을 거짓말 없이 바라볼 수 없어. 모든 무장이 해제된 나는 울보야. 슬픔으로 숨이 막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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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알고, 내가 아는, 차혜경으로 남으려면 그 방법 뿐이 없으니까!
자존심이 아니야. 설석환. 잘못 생각하고 있어. 내 존재에 대한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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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차혜경이 싫다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그냥 영원히 그 모습을 지키고 살아야겠지. 근데, 그걸 위해서 네가 바라는 말을 내가 해줄 수는 없는 거야.
내가 네 뜻을 존중한다고, 널 따라줄 수는 없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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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분명 내가 망가질 거야.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 어조로 말할 수 있어?)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되묻는 답에 자신은 마땅히 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도망칠 곳이 없다고.)
당신이 이기적이냐고, 당신이 물었지? 진짜 이기적인 사람이야. 이렇게, 이렇게 아프게 만들어서 남는 게 대체 뭐야?
사람은 죽고서 모두 추억이 돼. 그러면 난 당신을 추억할 때, 행복한 모습과 이야기로 회고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이제는 잘 모르겠어. 잘, 모르겠어. 애환어린 추억을 자주 들춰보고 싶어질 지, 정말로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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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연습을 해야 한단 말이야. 당신을 생각해도 무던해질 수 있는 연습.
나도 당신을 존중해. 그렇기 때문에 나도 당신을 따라줄 수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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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진짜 행복이야? 나는 잘 모르겠어. 설령 아프더라도 우리가 지금 함께 하고 있고, 이겨내려고 하고 있잖아. 나도 정말로 잘 모르겠다.
이 과정 없이 흔들리는 땅 위에 쌓은 행복이 뭐 얼마나 진실된 건지. 너는 애환 어린 추억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그저 너를 추억할 거야. 차혜경이라는 사람을. 그리고 그건 그렇게 슬프지 않을 거고, 나는 또 웃어버리겠지.
그리고 왜 자꾸 죽음을 상정하고 말을 해? 나는 더 이상 질문할 수가 없는데.
미안, 어떻게 해 줄지 물어봐 놓고. 원하는 걸 들어줄 수가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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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아무것도 망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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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부딪히게 됐고. 그러다 약한 부분을 찔렸어.
당신은 망가지지 않았을 지 몰라도. 난, 곧 망가질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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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세수를 한다. 역시나 자신은 차혜경을 알 수 없다.) 모르겠어, 나는. 여전히, 지금도, 내내... 네 마음을 모르겠어. 우리에게 최선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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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최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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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망가지는 최악은 나에게는 최선이 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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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닮아가지 마. 적어도 그건 내 설석환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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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웃는다. 적어도 유쾌함의 웃음은 아니다.)
네가 바랐잖아. 그렇게 말해 달라고 했잖아! 내가 그렇게 말해줬으면 넌 어땠을 것 같은데? 처음 그렇게 말했다면, 어쩌면 게임은 이미 끝났겠지. 지금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 테고.
나는 지금 우리가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혜경아. 아마 너도 모르겠지. 솔직함의 대가가 이런 난장판이니까, 우리가 그동안 서로 사렸던 걸지도 모르지. 물론 후회는 하지 않아. 이런 꼴을 보면서라도 솔직할 필요가 있는 거니까. 그렇지만 답답한 건 별개의 일이야.
(혜경을 한 번 보고, 고개를 숙인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나면, 한숨과도 같은 숨이 뱉어진다.) 그래서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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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모든 게 당신을 위한 일이고.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이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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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리고는 다시 한 번 숨을 뱉는다.) 그래도 답하자면. 적어도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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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에 우리가 해야하는 건 언쟁이 아닌 게임이기도 하고.
(피하고자 하는 가림이 아니었던 것인지. 혜경은 금방 손을 얼굴에서 내렸다. 피곤했다. 아주 많이. 따지자면 이제 결과는 생각하지 않고 끝내고 싶을 만큼. 그래서 배려하나 없이 내뱉었다.)
차라리 그 총을 들어서 나를 쏠래?
그게 날 위한 거라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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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혜경은 알고 있을까. 당신이 처음 시선을 총에 두었던 때부터. 장난치듯이 총에 손길을 뻗었던 때부터. 아마도 나오게 될 그 말을 이 악물고 기다렸다고. 그렇게 말하면, 당신은 무슨 반응일까.)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당신도 이미 알 테지. 설석환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테이블 위에 있는 리볼버를 든다. 탄창을 확인하고 장전하는 폼이 매끄럽다.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건넨다.)
내가 차혜경을 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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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리석은 자는 태연자약한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이런 의도로 간사한 혀로 죽음을 논한 것이 아니며.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당신을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설마, 설마. 당신.
... 나한테 이걸 대답이라고 말하는 거야?
나한테 상처를 주고 싶은 게 아니라며. 행하는 모든 일이, 우리를 위한 거라며.
(날 또 기만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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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혜경, 나는 그럼... 널 위해서 널 쏴야 해? 그게 당신이 말하는 우리를 위한 일이야? 당신 상처 주기 싫으니까 난 상처 입어도 돼?
그런 질문을 했으면, 이런 대답을 받을 각오를 했어야지. 차혜경, 원하는 답을 듣고 싶었다면 넌 그래선 안 됐어. 혜경아, 너는 그러면 안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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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혜경은 손에 들린 것을 본다. 그리고 별안간 소리를 내질렀다.)
(당신이 그랬지. 슬픔을 다 토해내라고. 그러면 숨이 막히지 않을 거라고. 그건 말이다. 참으로, 사실이었다. 혜경은 고막을 찌르는 듯한 소리를 내지른 후. 충혈이 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나한테는 당신이 필요하다고! 내 곁에 있으라고 붙잡지도 않았잖아! 그냥 숨만 붙은 채로 살아있는 것만으로 만족하겠다고 말했잖아!
욕심내지 않겠다고도 말했잖아! 그렇게 욕심을 냈다가, 냈다가, 이렇게. 어차피 내 곁에 있어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서 힘들어하고 싶지 않았어!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러듯. 우리는 사랑하는 게 많은 사람이니까. 너무 사랑해서, 그것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어줘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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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금 더 간절하잖아. 당신보다 내가 더 간절하잖아. 당신에게 나는 없어도 괜찮겠지만. 난, 아니거든?
(테이블 중앙보다 더 멀리. 설석환 앞에 리볼버를 가져다 둔다.)
난 내 가장 큰 자랑을 망칠 수 없어...
그것도 내 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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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결정하고 결심하고 답 내리고 통보하듯이. 그걸 질문이라고 해?
왜, 왜 나는 너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해?
내가 품은 사람이 많다고 해서, 차혜경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기는 건 아니잖아.
차혜경, 혜경아!
왜... 내가 단 하나 할 수 없는 일을... 나한테 부탁하는 거야...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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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러면 너는 행복한 모습을 가지고 가고. 나는 그 행복함에 네 피를 뿌리라는 거였어? 어떻게 그래.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하, (실소가 터지고 몇 번 숨이 섞인 웃음을 터뜨리다가 가라 앉고 거칠어진 목소리가 튀어 나온다. 아마도 처음으로 화를 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차혜경!!!
(숨을 고르지만 치밀어 오르는 감정은 쉬이 삭힐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되는 감정이고. 주먹을 쥔 손이 힘을 못 이겨 사정 없이 떨린다. 그럼에도 내리칠 수 없는 것은 앞에 혜경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의 원흉이 리볼버라도 되는 양 그것만을 내려다 보다가 들어 올린다.)
(여전히 터져 나오는 웃음은 어떤 감정을 담았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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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승심이라고 할까. 몰랐는데. 욕심 중에는 그런 것도 있었나보지 싶다.)
(하지만 여전히, 여전히, 여전히, 여전히도 말이다. 나는 당신의 말에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자신의 말에 이 사람이 어떻게 상처를 받는 지도 보게 됐다. 당연하지. 그 놈의 호승심이라는 놈이 여자의 눈을 감게 하지 못 하고, 시선을 제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에 향하지 못 하게 했으니까.)
(대신에 일그러진 얼굴. 그러니까 그의 눈동자에 비춰지는, 내 모습만큼이나 일그러진 얼굴과....
자신을 향해 쥐여주고자 했던, 손이. 그 손이.... 이번에는 다른 의지를 가진 채로 그의 손에 쥐여진 것을 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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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은 사실이 하나 있는데. 여자는 감이 좋았다. 더구나. 당신이 할 지 모르는 1초 뒤의 미래의 대답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신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의 문답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처럼. 혜경은 팔을 뻗어서, 당신의 손을 쥔다. 그 손은 당연코 리볼버를 쥔 쪽이다.)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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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손을 쥔 혜경의 손을 떼어내는 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그 손을 떼어내고 거리를 벌리는 것쯤이야.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혜경아, 나는... 정말 모르겠다. 너를 모르겠어. (떨리는 입술을 감추기 위해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혜경을 바라본다.)
(목적지를 정하지 못 했던 총구를 들어 올린다.)
(자신을 향해 총구를 들어 올리고 눈을 감고 잠시 숨을 고른다.)
차혜경, 나는 정말로... 당신을 상처 주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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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 '우리'에 결국 나는 없는 것 같다.
(자신을 향했던 총을 돌려 혜경에게 겨눈다. 어떻게 그 눈앞에서 죽겠는가. 가슴 속에 퍼내고 퍼내도 슬픔이 있다는 저 여자에게. 어떻게 자신을 얹어 주겠는가.)
그래, 나는... 당신 말대로. 당신이 없어도 괜찮을 거야.
(그러니 조금 더 잘 참고, 조금 더 잘 견디고, 눈물 흘릴 줄 모르는 내가 괜찮지 않은 편이 낫다. 그런 상처는 줄 수 없으니까.)
차혜경, 내 결정은 너를 위한 결정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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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그 어디에도 나를 위한 건 없어. 이기적인 사람.
그래도 여전히 내내 그런 차혜경을 좋아해.
그리고 아주 많이... 지독하게.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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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한 번은 자신의 손이 무력하게 떼어졌을 때였다. 한 번도 이런 식의 거절을 받아보리라 생각하지 못 했다. 아니, 뭐. 이런 행동을 그에게 받더라도 말이다. 어디선가 날아오는 흉기를 피하게 하기 위해서거나, 내가 보지 못 하고 망가트릴 뻔한 중요 증거가 있다거나. 그런 식의 일로, 그에게 이끌릴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런 게 아니었다. 구조나 도움이 아닌 명백한 거절의 행위었다.)
(그리고 다음 한 번은 그 총구가, 그 총구가, 미래를 보듯 자신의 머리에 스쳤던 행동이었을 때였다. 세상의 이런 비유가 있었다.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 앉았다는 말. 나는 그 비유를 이해하듯, 숨을 멈췄다.)
(그리고 마지막 한 번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 ... ..., 나는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할 자신이 없었다. 그 숨은 지금도 쉬어지지 못 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바로 현재를 말하는 것이다.)
(난 기쁨도 슬픔도 아닌 것에 숨이 막혔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봐 줄 남자는 없다. 실질적으로 게임은 끝이 났고. 놀이가 끝난 만큼 남은 것은 잔혹한 현실 뿐이니까. 세계는 멸망했고, 우리는 단 둘만이 살아남았고, 그 생존마저 허락하지 않는 듯한 리볼버가 있는 고독의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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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게 말 할 숨도 심장도, 나에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전하고 싶은 것은 확실한데. 전할 수 없다는 게, 아, 정말로 힘든거구나 알게 된다.)
(그래도 이 머리는 아직까지 공기가 없어도 버틸만은 했다. 생각도 사고도 할 수 있었다. 혜경은 그래서 그 머리를 믿기로 했다.
내 생각에는 이 남자는 내가 움직여도 바로 쏘지 않을 거야. 나를 대하는 것과 범죄자를 대하는 것이 다르거든. 지금만 봐도 그래. 총을 쥔 손은 흔들림이 없어. 하지만 총구 너머의 눈은 흔들리잖아. 너는 흔적을 모아서 진실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 그렇다면, 네가 찾은 이것을 진실이라 믿고.
걸어간다. 의자에서는 일어난 지 오래였으니. 테이블 옆으로 빠져나와서, 참으로 한심하게도, 보폭을 길게 잡아서 한 걸음이면 되는 이동을 하고 당신 앞에 선다.)
(눈 앞에 놓인 총이 두렵지 않다. 그것은 애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듯. 혜경은 덜덜 떠는 손으로 석환의 얼굴을 부여잡았다. 눈가를 한 번, 인상적인 상처가 있는 코를 한 번, 당신의 볼을 다섯 번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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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혜경... (눈을 떠 가까이 보이는 얼굴을 응시한다. 찬찬히 하나씩. 그리고 아마 본래라면 하지 않았겠지만. 혜경이 그러했든 저 또한 한 손을 뻗어 그 뺨을 쓸었다.)
인사는 필요 없을 것 같아. (손을 떼고 마주 보는 얼굴은 차분하다. 일그러진 얼굴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방아쇠에 손을 올리고 숨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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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은 당신의 얼굴을 매만지던 것을 멈추고, 그 눈을 아주 오래 바라봤다. 그리고 코에 한 번, 입술에 한 번. 자신의 입을 겹쳐 맞췄다. 인사는 하지 않으마. 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축복 뿐.)
(안녕, 나와 머나 먼 타인이여. 내가 결코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여. 그래서 당신또한 이해하지 못 할 나여.)
(혜경은 방아쇠를 잡고 있는 그 손 위에, 자신의 손가락을 겹쳐 올렸다. 눈은 천천히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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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긴 눈. 줄곧 감겨 있던 눈. 그 안에 담긴 눈동자는 지금 어떤 모양을 가지고 있을까. 제 손 위로 겹쳐지는 손을 느낀다. 그렇게 손가락에 힘을 넣는다.)
(방아쇠를 당김에는 망설임이 있어서는 안 되니까, 단번에. 손가락에 힘이 실리고 자신도 눈을 감는다. 그렇게 총성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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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발음이 터집니다. 가까이에 있었으니, 그 소리에 잠시 귀가 먹먹해질 것입니다.
터지는 소리가 납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당신 앞의 차혜경이 사라졌으므로.
그리고 당신의 무릎 앞에 남은 것은 보라색 라일락.
바람 한 점 불지 않음에도, 꽃잎이 흔들립니다.
불어오는 바람을 찾고자 주변을 둘러보면. 사방을 아우르고 있던 거울에 변화가 생긴 것을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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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금이 거미줄마냥 뻗으면. 이내, 버티지 못 하고.
그리고 그 속에서 색색의 라일락이 쏟아져 나옵니다.
끊없이, 끝이없이, 계속해서….
어디선가 차혜경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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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은 사람을 찢고는 하지.
라일락은 소원을 이루어주고.
당신의 소원은 뭐야, 설석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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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당신.
혹시 라일락의 향을 아시나요?
약한 듯 하지만. 계속 맡을 수록 진해지는 그 향을 말이에요. 그 향이 당신의 폐에 가득 차고, 숨을 틀어막기 시작하면요.
뭉툭한 격발음이 한 번 더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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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정말 무엇이든 상관이 없이.
그리고 이제 눈을 뜹시다.
이곳은 페인트칠이 거의 까진 천장과
마모된 아이보색 타일 바닥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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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 녹화실입니다.
지이잉, 지이잉.
테이블에 중앙에 올려져 있는 휴대폰이 진동합니다.
화면에 보이는 것을 보자면, 어머. 문자 메시지 한 개가 도착을 했군요.
그리고 그 화면에 켜진 시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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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https://imgsrv.roll20.net/?src=https%3A//i.imgur.com/f3cMLsw.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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